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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접수 : 중국과의 관계 전망은?

by 리우봉 202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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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15일,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인 카불 지역으로 들어서자, 아프가니스칸 내무 장관은 “탈레반에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미군과 동맹군이 철수를 지시한 5월 이후 불과 3개월만입니다.

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본격적인 권력 인수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알리 아마드 자랄리 전 내무장관이 새 과도정부의 수장에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탈레반은 앞으로 아프간 내 외국인과 각종 시설 운영 등에 관한 원칙도 밝혔습니다. 수도 카불 내 외국인은 원할 경우 떠나거나 새 탈레반 정부에 등록해야 할 것이라고 했고, 공항과 병원은 계속 운영될 것이며, 긴급 물품 공급 역시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아프간 병사들에게 귀향이 허용될 것이라며 군대의 해산을 지시했습니다.


뉴시스




탈레반이 이처럼 아프가니스탄을 빨리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고질적 무능, 부정부패, 권력다툼을 꼽을수 있습니다. 정부군엔 매년 50억~60억 달러(약 5조8000억~7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었고, 미국은 2005년부터 지난 6월까지 아프간군기금(ASFF)으로 750억2000만 달러(약 87조7000억원)를 지원했습니다.

무기와 장비, 훈련비 등을 합쳐 지난 20년간 아프간군에 830억 달러(약 97조원)를 쏟아부었다는 분석도 있는데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미스터리입니다. BBC는 정부군 병력의 상당수가 장부에만 존재하는 ‘유령 군인’이라고 보도했고, 부패한 간부들이 급료를 가로채려고 숫자를 허위로 기재해 군 당국은 실제 가용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아프간 정규군의 실제 병력은 장부상 30만의 6분의 1 수준”이며 사기 저하도 심각하다 보도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부군은 부패한 정부와 정치인들이 예산을 빼돌려 제대로 먹지도 못하게 되면서 싸울 동기를 잃었다”고 전했습니다.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잭 와틀링 연구원은 “정부군은 종족·가족 연고가 없는 곳에 투입되는데 이 때문에 거점을 더욱 쉽게 포기하게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연합뉴스


BBC는 “다른 무장조직과 동조 세력까지 합치면 탈레반 세력은 2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탈레반의 실제 전투원이 알려진 것보다 많았는데 국민이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에 등을 돌린 게 탈레반 세력 확장의 배경으로 꼽힙니다.

왓슨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아프간에 친서방 민주정부를 심으려고 지난 20년간 2조2610억 달러(약 2600조원)를 쏟아부었습니다. 재건비와 전쟁 예산, 참전용사 관리, 전쟁 차입금 예상 이자 등을 합친 금액으로 올해 한국 국방예산(52조원)의 50배나 되는 금액이라 합니다.

문제는 지난해 발간된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재건 비용 1430억 달러(약 167조원) 중 적어도 190억 달러(약 22조원)는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23일 미국의 ‘내셔널인터리스트’는 “미군 철수가 예정돼 전력 확충이 시급했던 10개월 동안 국방부 장관이 공석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니 대통령은 직접 군대를 지휘하겠다며 임명을 늦추다 지난 6월에야 장관을 임명했지만 민심은 이미 돌아섰고, 탈레반의 파상 공세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이 아프간을 위해 싸울 때”라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 왔던 이유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갖고 있습니다. 고대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래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 19세기 대영제국이 아프간 지역을 정복하려다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점령 시도도 실패로 끝났고 소련제국의 붕괴를 야기했다고도 합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쳐들어간 미국도 끝끝내 탈레반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무덤 하나를 추가하게 됐습니다. 험준한 산악지형에선 강한 군사력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은 ‘와한회랑(Wakhan Corridor)’이라는 협곡을 통해 국경선을 접하고 있습니다. 당나라 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구한 불경을 싸들고 이 길로 귀국을 했다고 하죠.



파미르고원과 힌두쿠시산맥 사이에 있는 이 회랑은 길이 400㎞, 해발 고도 4000m 이상의 동서로 긴 협곡지대인데, 동쪽 끝 92㎞가량이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접합니다.

탈레반 정권 시절,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 근거지를 둔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이라는 위구르족 독립운동 단체에 크게 시달렸습니다. 신장 내 주요 도시는 물론, 중국 전역에서 200여건의 테러 활동을 벌였고, 2009년에는 우루무치에서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변경 지역 안정을 안보의 핵심 조건으로 꼽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정권 입장에서 신장 지역과 탈레반은 극심한 골칫거리였습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조지 부시 정부가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은 골칫거리를 청소할 기회였기에 중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조를 약속했지요.

16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 정세는 이미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며 2주 만의 정례 브리핑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염원과 선택을 존중한다”면서 “중국은 아프간 국가 주권과 각 정파의 염원을 충분히 존중하는 기초 위에 아프간 탈레반 등과 연락과 소통을 유지해, 아프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발휘하겠다”며 원칙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탈레반 정부를 승인하겠냐는 질문에도 즉답을 피하고 “건설적 역할 발휘”란 입장만 반복했습니다.



화 대변인은 “어제(15일) 아프간 탈레반은 전쟁이 이미 끝났으며 협상으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세우고, 책임지는 행동으로 아프간 국민과 외국 외교 사절의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점을 중국은 주의한다”며 “중국은 (탈레반이) 발표를 실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압박했습니다.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과 신장웨이우얼 독립 세력의 연계를 염두에 둔 발언도 잊지 않았는데요. 화 대변인은 “탈레반 측은 여러 차례 중국과의 양호한 관계를 희망했고, 중국이 아프간 재건과 발전에 참여하길 기대했으며, 결코 어떤 세력도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위해를 가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며 “중국은 이를 환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7월 28일 탈레반 이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중국의 초대로 톈진(天津)에서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회담을 갖고 ETIM과 관계를 끊겠다는 다짐을 재확인한 발언입니다.

앞으로 중국이 취할 것으로 보이는 전략으로는 아프간 재건비용이라며 돈으로 탈레반을 달래는 방법과 군사력 동원으로 보이는데요. 이미 아프간에서 구리 광산과 석유 광구 등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고 중국정부 입장에서 돈으로 국경의 안정을 살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탈레반은 종교가 모든 것에 앞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기에 이들이 중국의 무슬림 반군들을 숨겨주거나 지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봤자 믿을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후 중국 내 ETIM이 부활해 무장 테러를 자행한다면 중국 정부가 군사 행동을 할지도 모르지요. 중국은 베트남전이 끝난 후 베트남의 극단적 반중친소 정책과 캄보디아 침공을 참다못해 1979년 베트남과의 전쟁을 선포해(중월전쟁) 호기롭게 쳐들어갔다가 베트남군의 기세에 눌려 별 소득 없이 철수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베트남전의 데자뷔가 생겨날 수 있겠네요. 중국은 아프간이라는 ‘제국의 무덤’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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